신들과 성자들
사람들이 기도하고, 맹세하며, 논쟁을 벌이는 존재들.
치유의 성자
그녀는 교리 대신 장부를 남겼고, 의도적으로 그리했다. 레즈그의 베사는 결코 닫히지 않는 병동과 교리 하나 없이 잔불겨울을 버텨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병동 벽면에 적힌 산술로, 그녀의 교단들이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 필체였다. 누구의 살점으로 누구를 고쳤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레즈그는 그녀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으며, 교단들은 법정에서 벽면이야말로 더 위대한 유물이라 주장한다. 생을 소진할 공여자는 벽 앞에서 그녀의 네 마디 말을 읊는다. "베사여 저를 먼저 거두소서." 그러면 시술사가 이름을 적는다. 그녀 자신의 개혁자들은 자비의 성자가 자비 대신 장부를 남겼으며, 그 장부를 거꾸로 읽으면 결국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꼴이 된다고 말한다.
레즈그의 베사, 열린 병동, 장부의 관리인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베사여 저를 먼저 거두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매장된 자
신도들은 말한다. 장부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노라고. 킬모린의 23개 주 중 19개 주가 이 모임을 법으로 금지했기에, 한 점조직은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다. 다섯 사람은 각자 맡은 다섯 관측을 전달하고, 서로의 준비를 지켜보며, 집회소 없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단 한 권의 사본을 쥔 관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두 개의 척도가 서로 모순되는 곳에 모이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 만큼 무언가가 자주 응답한다. 그 응답이 무엇인지는 점조직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그릇된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인구 조사는 동의가 아니며, 무덤은 죽은 자를 부려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다. 철야단은 무덤도, 이름도, 날짜도, 공인된 인수자도 없으니 의식을 감사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지하신약자들은 바로 그게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자, 장부 이전의 자라고도 불린다. 서약: “장부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노라.”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용사의 성자
그는 자신을 거부한 도시를 위해 성벽을 지키다 전사했다. 아크의 코린은 자신에게 시민권을 두 번이나 거부했던 도시의 성벽 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용사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들을 경멸하는 자들을 위해 성벽에 주둔하며, 대가를 바라고 성벽을 지키지 않는다. 공성전이 벌어지면 그들은 워스톤의 그림자가 드리운 자리에 서서, 목격자들 앞에서 학살을 자행해 보라며 공성측을 도발한다. 길드들은 용사가 계약보다 자신의 규율을 먼저 따른다고 불평하면서도 다음 계절이면 어김없이 그들을 고용한다. 성벽은 버텨냈고 회계 장부가 이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아크의 코린, 돌파구, 매수되지 않는 방패라고도 불린다. 서약: “코린이여 나와 함께 서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의 성자
아우렐은 정착체를 불태웠다. 그녀의 팔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법정이 인가했던 역정착체를 불태웠다는 죄목으로 리투르의 아우렐을 교수형에 처했던 법정은, 40년이 지나 그녀를 단죄했던 판사들이 모두 죽고 난 뒤에야 그녀를 시성했다. 그녀의 의식이 부여하는 불길은 수용된 사자와 산 자의 육신을 가리지 않고 태우지만, 수용된 자들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낙인단의 종대는 균열지대에서는 1개 중대 몫을 하지만, 성벽 뒤에 자리 잡은 건강한 인간들을 상대로는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든다. 그녀의 오른팔은 은 함에 담겨 공성전에 쓰이곤 했다. 그 팔은 1469년에 리투르를 떠났고, 지금 낙인단이 귀환을 약속하는 것은 봉인된 은빛 소매뿐이다.
리투르의 아우렐, 첫 번째 빛, 불타는 사정관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새벽이여 나를 지키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장간의 아버지
그에게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 일손을 보일 뿐이다. 그에게 청원하는 이는 없다. 신도는 작품을 완성해 작업이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첫 교대 때 돌아와 무언가 응답했는지 확인한다. 어느 아침에는 망치 자국 하나 없이 이음매가 메워져 있기도 하다. 대개의 아침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누구도 이를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직하게 만든 작은 물건도 셈에 들며, 수리할 수 있을 때 고백한 결함 역시 마찬가지다. 장례식에서 가족은 고인이 완성한 작품 하나와 미완성 작품 하나를 전시하며, 흙손을 집어 드는 자가 그 빚을 떠안는다. 반쯤 쌓은 벽 하나를 두고 갈라선 가문도 있다.
증명된 일손, 참된 중량, 차가운 모루라고도 불린다. 서약: “참된 무게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녹색 어머니
그녀의 사당은 꺾꽂이 묘목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살려두어야 한다. 옛 신앙은 사람 손길 아래 자라는 모든 것—부엌의 허브, 과수원의 접가지, 길거리의 그늘진 나무, 길드 안뜰의 하트우드—을 통해 녹색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그녀의 사당에 놓이는 것은 꺾꽂이 묘목이며, 죽은 묘목을 교체한 관리인은 새 묘목이 어디서 왔는지 소리 내어 밝혀야 한다. 값비싼 품종이라고 해서 온전한 토종 나뭇가지보다 더 신성하지는 않으며, 남몰래 바꿔치기하는 것은 식물이 아니라 돌봄 자체를 속이는 거짓이다. 라리스 과수원의 가문들에서는 두 가지 물건을 두고 동업의 서약을 맺는다. 둘이 함께 돌볼 꺾꽂이 묘목 하나,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이 여전히 단독으로 소유한 도구 하나다.
큰 가지, 선 작물의 어머니, 뿌리내린 자라고도 불린다. 서약: “뿌리와 사냥개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등롱의 성자
켜진 등롱은 이곳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신원이 밝혀졌음을 뜻한다. 시즈의 론은 어떤 법정도 인을 찍어주지 않은 실종자 통지서를 품고, 정착틀이 무너져 균열지대에 수용된 사자들이 여전히 서 있는 길을 걸었다. 그는 불 켜진 등롱과 목이 베인 채 카르브 길목에서 발견되었다. 등롱지기는 야간 호위, 서신 전달, 그리고 행방불명자 명부 작성 등 그의 경로를 그대로 이어간다. 그들의 빛은 축복이 아니라 증거이며, 켜진 등롱 아래서 발견된 시신은 이름과 날짜, 그리고 무덤을 얻는다. 시즈는 그의 기름에 웃돈을 붙여 팔며, 그 거래 방식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시즈의 론, 꺼지지 않은 등롱, 실종자를 읽는 자라고도 불린다. 서약: “머물러 준 등롱에 걸고.”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대 공허
어둠이 먼저 왔으니, 문중은 여전히 경계를 선다. 이름은 둘뿐이며 공인된 세 번째 이름은 없다. 고대 공허는 경외를 담은 이름이고, 공허의 폭군은 적개심을 담은 이름이다. 웨시른의 방 안에서는 어떤 이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알 수 있다. 각성단의 교리는 한 줄로 요약된다. 접촉은 감시의 의무를 낳을 뿐, 지배의 권리를 주지 않는다. 응답에 판단을 넘겨주는 것이 각성단이 규정한 죄악이다. 목소리나 움직인 흔적, 불가능한 사실 등은 증거일 뿐 결코 법이 될 수 없다. 궁형 경비대는 먼저 온 존재에게 복종해야 마땅하다고 믿으며, 무릎을 꿇고 그렇게 말하기에 같은 의식에 기반을 둔 종단으로부터 사냥을 당한다.
공허의 폭군, 이전의 어둠, 먼저 계셨던 것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먼저 여기 있었던 어둠에 걸고.”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생명부여자
세 가지 신앙이 하나의 나무에서 세 가지 존재에게 감사를 표한다. 생명부여자는 세 신앙이 만나는 곳 어디에서나 하트우드의 응답을 부르는 이름이다. 옛 신앙은 그것이 직분을 맡은 녹색 어머니라고 말한다. 철야단은 하트우드가 응답할 때 결코 이름을 댄 적이 없으니 이름을 붙여주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아바술은 어떤 위업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으며, 돌려줄 수 있는 것을 돌려주는 의무만을 말한다. 외부인들은 이를 두고 역시 생명부여자라 부른다. 세 의식은 똑같은 서리와 똑같은 저장품의 소진을 남기며, 일치하는 서리는 단 한 번도 응답자의 이름을 드러낸 적이 없다. 4세기가 지난 지금도 라리스의 정원사, 수호자, 해안지기는 나무 한 그루에 서서 서로 다른 세 가지 존재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응답, 세 번째 주장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가져간 것은 돌려주어라.”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자비의 성자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열한 명을 베어냈다. 그들은 그녀를 성자로 추대했다. 볼드의 할다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친오빠를 포함해 수용된 사자 열한 명의 지지대를 끊어버렸다. 볼드가 그들을 먹일 수도 없고 놓아주지도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철야단은 그 일로 그녀를 성자로 추대했다. 검은 경야단은 그날 밤을 교단이 처음으로 축복한 살인이라 부르며 그녀의 이름을 저주처럼 입에 올린다. 그녀를 따르는 자비단은 한 가문의 망자가 비축한 식량보다 오래 버티게 되었을 때 영장과 증인 둘, 그리고 단도를 들고 나타난다. 그들은 결코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지 법률, 경비대, 통치자, 그리고 친족들은 여전히 그들을 들이거나 막아선다.
볼드의 할다, 열한 명, 최후의 관리인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할다여 지체하지 마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비탄의 여왕
동전 두 닢이 슬픔이 산 자에게 진 빚이 무엇인지 묻는다. 검은 경야단은 하나의 질문을 두고 철야단과 갈라섰으며, 그 의문을 결코 넓히지 않았다. 타인의 노고로 연명하는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그녀의 표식은 평평한 돌 위에 남겨진 동전 두 닢이며, 교회를 거부하는 이들조차 무덤에 이를 남겨둔다. 가문마다 그 동전 두 닢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 해석은 동전 두 닢을 남겨두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희생을 치르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는 어디에도 신전이 없다. 사안이 불분명할 때 그녀의 교회는 관리를 끝내기보다는 확대하기를 원하며, 그녀의 서약이 그 나머지를 대변한다. 내 사람은 누구도 떠나지 못한다.
두 닢의 동전, 신전 없는 여왕, 품어둔 슬픔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내 사람은 누구도 떠나지 못한다.”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순례의 성자
아무것도 묻지 말고, 무엇이든 짊어지며, 얼음이 녹기 전에 건너라. 가물거림의 두 번째 겨울, 메네르갈로의 탈리아는 도시가 더 이상 어떤 장부에도 남아있지 않은 아이를 안고 얼음 위를 내려와 비턴으로 왔다. 그녀는 지나치는 마을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오직 베풀어주는 것만을 받았다. 여덟 성자 중 유일하게 그녀의 유물은 안치된 적이 없다. 장화는 계속 길을 떠나며, 순례단의 거처는 그 계절에 장화가 닿는 곳이다. 철야단의 자체 절차에 따르면 감사받지 않은 참조는 거짓 조화식을 야기할 뿐이라고 하며, 교단 법학자들은 1201 C. 이래로 이 점을 집요하게 지적해 왔다. 순례단은 이에 답하지 않았고, 장화는 멈추지 않았다.
메네르갈로의 탈리아, 겨울의 걸음, 미등록자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서약: “나를 건네주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갱신의 성자
누구도 인가하지 않은 첫 번째 나무. 모든 길드가 그녀를 모방한다. 진두시의 이스메르는 아무도 인가하지 않은 최초의 하트우드를 심었다. 이는 1051 C.에 명부에서 제명된 마을의 죽어가는 성소에서 잘라낸 접가지였다. 이제 나무를 심는 모든 길드는 그녀의 죄를 되풀이하며 그것을 헌장이라 부른다. 그녀를 따르는 재식자들은 병든 가지를 접붙이고, 다듬고, 공개적으로 불태워 이웃들이 그 불타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 이스메르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훔친 묘목에서 자란 나무가 그것이 잘려 나온 과수원에 빚을 진 것인지 여부다. 라리스인들은 그렇다고 길게 늘어놓으며, 그에 맞춰 꺾꽂이 묘목의 값을 매긴다.
진두시의 이스메르, 무허가 접가지, 두 번째 과수원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이스메르여 뿌리내리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부패의 군주
작물은 일찍 거둘 수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수확의 정원은 퇴비, 병든 외양간, 역병이 도는 방, 수확이 끝난 다음 주의 밭 앞에서 부패의 군주를 부른다. 공식적인 접견 의식에서는 변해가는 표본을 온전한 표본 곁에 두고, 살아있는 인수자를 방에 머물게 한다. 부엌에서는 간단한 몸짓 하나로 족하다. 온전한 음식을 나누기 전에 멍든 부분을 떼어놓는 것이다. 정원의 아이들은 기도문보다 금기부터 배운다. 부풀어 오른 사체에 손대지 말 것, 매장지 하류의 물을 마시지 말 것. 이곳 일꾼들은 첫 수확 바구니와 멍든 과일 하나를 두고 관원 세 명이 셈에 넣을지 말지 다투더라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선 작물, 들과 휴경지의 군주라고도 불린다. 서약: “만물이 그의 들판이니.”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수호의 성자
영주의 결속도 짐마차꾼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카르브의 에드린의 두 손은 그곳 지부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두 손 모두 부러져 있었다. 명부가 끊긴 후 그가 정착체 정원을 지킨 지 아흐레째 되던 날, 영주의 부하들이 명부의 순서를 앞당기려 들이닥쳤다. 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에드린은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해 그저 겨울 추위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수호자들은 그 이후로 줄곧 하트우드에서 망자가 포박되는 순서를 정해왔다. 철야단은 에드린이 의식에 응답한다고 말한다. 신심이 없지 않은 카르브의 석공들은 그가 정직한 장부에 응답한다고 말한다.
카르브의 에드린, 아흐레째 날, 줄의 관리인이라고도 불린다. 서약: “수호자여 나를 붙드소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야성의 사냥꾼
사냥감에는 감사를 표하고 먹어 치우되, 결코 공짜라 부르지 않는다.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 행한 도살—솎아내기, 겨울철 도축, 마을을 먹여 살린 사냥—앞에서 야성의 사냥꾼에게 감사를 올린다. 거두어들인 것은 남김없이 먹거나 가공한다. 그 뒤에 적히는 장부에는 좋은 날이든 궂은 날이든 짐승의 이름, 상처, 고기, 그리고 손실이 기록된다. 그녀의 붉은 사냥단은 거처도 두지 않고 세금도 걷지 않기에, 가축과 무쇠, 길가의 쉼터와 겨울 양식의 형태로 고용된 곳에서 먹고산다. 옛 신앙을 따르는 대부분의 가문은 사냥을 하지 않으며 도축할 때 그녀에게 감사하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하트우드에서 결속한다. 그녀의 저주는 의식보다 더 널리 퍼져 있다. 그 사냥개가 네 이름을 알기를.
도태, 겨울의 몫, 문가의 사냥개라고도 불린다. 서약: “그 사냥개가 네 이름을 알기를.”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